悲感素月

비감소월
HNH Gallery
Dec 15 ~ Dec 30, 2025

Dec 15 ~ Dec 30, 2025

비감소월 (悲感素月) Silent moon jar

일반관람: 2025.12.15~12.20 (12:00~18:00)

예약제관람: 2025.12.22~12.30

전시장소: HNH Gallery (T.02-2285-1996)

서울 중구 수표로1 (2F)

 

悲 感 素 月

글: 이일우(사진비평, 전시기획)
※ 존재론적 인간
시간 속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반추하며, 스스로의 모습을 세계에 투영한다. 이는 인간이 세계를 단순히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라, 그 안에서 스스로를 구성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적 존재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인간은 결국 자신의 유한함과 마주한다. 세계와 자신을 하나로 여겼던 시간들은 점차 흘러, 세계를 구성하는 무수한 지점 중 하나로서의 로 돌아오게 된다. 그 순간 인간은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만의 시간 속에서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숙명과 맞닥뜨린다. 이 깨달음은 고통스럽지만 필연적이다. 세계 속에서 자신을 비추고, 그 반사된 이미지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일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숙명이다. 결국 인간의 삶이란, 세계 속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비추며 그 반사된 이미지 속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여정이다.

※ 마음을 비추는 달항아리
한국인에게 달항아리는 단순한 도자기가 아니다.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무엇이 담길 수 있는가를 묻게 하는 그릇이다. 순백의 달항아리는 의미를 제시하지 않는 열린 대상으로서,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기억과 시간을 그 표면 위에 비추게 만든다. 그 앞에서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관조하고, 내면의 울림을 경험한다. 달항아리의 비어 있는 공간은 결핍이 아니라 존재의 고요함과 마주하는 자리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자신을 이해하고, 스스로의 존재를 되돌아본다. 둥글지만 완벽히 닫히지 않은 형태, 미묘한 불균형은 인간 존재의 모습과 닮아 있다. 완전하지 않기에 아름답고, 불완전하기에 더욱 인간적인 그 형태는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떠올리게 한다. 달항아리는 침묵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드러내는 장()이다. 그 고요한 표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 침묵 속에서 가장 깊은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 앞에 선 인간은 사물의 의미를 찾기보다,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로서의 자신을 자각한다. 따라서 달항아리는 단순한 미적 대상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성찰하게 하는 거울이자 인간적 사유의 공간이다.

신명(神明)’의 잔향
양재문은 오랜 세월 사진을 통해 ()’의 정서를 넘어서는 신명(神明)’의 세계를 추구해왔다. 그에게 신명은 세계를 스스로 구성하려는 의지이자 생의 에너지, 그리고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삶의 화두(話頭)’였다. 이번 《비감소월(悲感素月)》 전시에서 작가는 자신의 시간과 기억 속에 각인된 신명의 잔향(殘香)’을 달항아리에 투사한다. 신명이 남긴 여운은 고요로 가라앉고, 그 고요 속에서 작가는 자신의 내면을 응시한다. 독백과도 같은 그의 이야기가 자신이 아닌 듯 느껴질 때 쯤, 양재문은 삶이 자신의 몸에 남겨준 흔적들을 달항아리가 품은 여백에 담담히 옮긴다. 아파서 아름답고, 슬퍼서 따뜻한 그의 기억들이 순백의 달항아리를 스쳐 지나가며 시간과 존재의 향기를 남긴다. 달항아리를 응시하는 그의 시선은 어느새 자신에게로 향한다. 작가는 그 표면에 비친 미세한 흔적들을 바라보며, 달항아리에 투영된 자신의 존재를 관조한다. 그 고요한 순간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다시 태어나는 양재문의 고요를 마주한다.

※ 비감소월(悲感素月)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양재문의 《비감소월》에는 존재를 향한 자기 고백적 성찰과, 세계로 향했던 시간과 기억을 연민의 눈으로 되돌아보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다. 그의 사진은 인간의 온기를 품고 있기에, 슬픔을 머금으면서도 따뜻하게 빛난다. 양재문은 더 이상 무엇을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조용히 나는 여기 있었다.”는 사실을 달항아리 여백 위에 남긴다. 그리고 그 여백을 통해 스스로를 바라본다. 시간과 기억을 투영하는 그의 행위는 삶의 의미가 외부가 아니라 내면에 존재함을 말해준다. 그의 달항아리는 어떤 정답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힘을 내려놓은 뒤 손끝에 남은 마지막 체온처럼, ‘존재의 잔향(殘響)’을 고요히 기록한다. 평생 사진으로 있음을 증명해온 그는 이제 조용한 고백의 시선을 남긴다. 달항아리의 고요 속에서 우리는 그가 살아낸 시간, 그리고 그 시간에 스며든 인간의 숨결을 느낀다. 달항아리의 여백은 말을 대신해 숨의 흔적을 남기는 공간이 된다. 그 표면을 스쳐 지나간 빛은 그 숨의 결을 담아내며, 인간의 온기를 전한다. 이렇게 완성된 달항아리 사진들은 인간의 삶이 얼마나 연약하면서도 아름다운지를 보여준다. 《비감소월》의 작품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관람자의 마음이 조용히 귀 기울일 수 있는 사유의 공간을 남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달항아리는 다시 한 번 한국인의 마음과 만나는 순간을 만든다. 생각을 말하지 않고도 남는 것. 말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말하지 않아도 이미 남아 있는 것. 양재문의 이번 작업은 바로 그 잔존의 조용한 형식이다.

 


작가노트

비감(悲感)은 그리움의 심연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이며, 소월(素月)은 밝고 희어 그 애뜻함을 비추는 고요한 빛으로, 비감소월(悲感素月)은 빛으로 드러난 마음의 풍경이자, 비천몽(飛天夢) 작업에서 이어진 내 영혼의 궤적이다.
그동안 작업해온 비천몽 시리즈는 한(恨)을 넘어서는 신명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춤사위에 담기는 여운에는 심연의 정적과 그리움의 빛이 스며 있다.
이번 작업은 그 침묵의 빛이 머무는 다음 과정으로 비천몽이 천상을 향한 기도였다면, 비감소월은 무심한 고요가 머무는 명상이다.
고요의 빛으로 그려내는 과정에서 나는 빛과 그림자의 숨결이 담기는 시간의 감정을 바라보았다. 달항아리에 투영되어 남겨진 빛의 흔적은 오랜 그리움이 천착된 내 삶의 여정이기도 하다. 신명어린 춤의 염원과 어머니의 기도, 그리고 내 영혼의 그리움이 천착되어 있다.
천상을 꿈꾸던 춤작업이 이제 달빛의 고요로 내려앉아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밝고 하얀 달빛이 되어 고요가 머무는 명상의 그릇이 된 것이다.